李文居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문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1월 전남 장흥군(長興郡)에서 양상기의진(梁相基義陣)에 참여하여 후군장(後軍將)으로 활동하였다. 양상기는 의병장 양진여(梁振汝)의 아들로 대한제국 진위대(鎭衛隊)의 군인이었다. 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 순사로 근무하면서 부친인 의병장 양진여와 의병장 권택(權澤) 등과 연락을 통하고 있던 중 파면되었다. 이후 그는 80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광주ㆍ담양(潭陽)ㆍ창평(昌平)ㆍ동복(同福)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문거는 1907년 음력 5월 순사로 채용되어 장흥경찰서에 근무하던 중, 1909년 1월 5일 양상기의진에 들어가 후군장으로 활동하다 9월 20일 광주군 석저면(石底面)에서 광주경찰서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11일 광주구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태(笞)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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