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植
1889-10-07 ~ 1930-03-0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문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문식은 서울 종로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태(笞) 90도(度) 를 받았다. 1919년 3월 서울 각 지역에서 조선독립만세운동이 발발하고 상인들의 철시와 공장직공들의 파업이 이어지자 일제는 3월 9일 보병 제79연대 3개 중대와 2개 기병 소대 및 1개 야포 중대를 시가 행군시켜 민중을 위압하고 공포 분위기를조성하였다. 그리하여 이후 10여 일간은 다시 잠잠하게 되었다. 그러나 3월 하 순으로 접어들면서 서울 시내의 시위운동은 점차 활기를 되찾고, 이를 무력으 로 탄압하는 일제에게 적극적인 저항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3월 23일부터는 주 로 야간에 수많은 시민들이 만세를 크게 불렀고, 오후 8시부터 약 100명의 시위 군중이 곳곳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날 시위 지역은 주로 종로, 동묘(東廟) 부근, 돈화문통시장(敦化門通柴場) 부근, 숭정(崇正)보통학교 부근, 연건동(蓮建洞), 숭 이동(崇二洞), 훈련원(訓練院) 부근, 안암천 부근, 왕십리 산 등지였다. 이문식은 종로 5가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 후 체포된 이문식은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항고하였으며, 경성복심법원에서 7월 12일 태 90도를 받 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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