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鎰
1866-02-1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문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곡산(谷山)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곡산의 천도교인들은 1919년 3월 2일 곡산 출신으로 서울에 다녀온 이경섭(李景燮)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수매를 전달받고, 또 3월 3일 수안(遂安)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고 곡산에 온 홍석정(洪錫禎)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후 송항리(松項里)의 천도교 전교실 등지에 모여 3월 4일 곡산 읍내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각지의 교인들에게 연락하고, 읍내의 중심지에 독립선언서를 게시하고, ‘조선독립만세’라는 깃발을 제작함으로써 거사를 준비하였다. 3월 4일 이경섭·김희룡 등이 이끄는 50여명의 천도교인들은 그 날 오전에 송항리 전교실을 출발하여 곡산 읍내로 향하면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고, 곡산 읍내의 헌병분대 앞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문일은 1919년 3월 4일 곡산 읍내의 헌병분대 앞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가 체포되어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7월(미결구류 12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6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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