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文載
1898-10-20 ~ 1950-06-1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문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홍성(洪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7일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홍성리(洪城里)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홍성읍에서 3월 7일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홍성의 각 면에서도 만세시위가 불같이 일어났다. 장곡면에서는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윤락중(尹樂重) 3형제들이 화계리·광성리·신풍리 주민들을 규합하여 산위에서 봉화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4월 7일 낮, 각 부락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밤이 되자 이문재 등 화계리·홍성리 마을 주민 300여 명은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습격하기 위해 장곡면사무소 뒷쪽에 있는 응봉산에 모였다. 이들은 몽둥이·도끼·괭이 등을 소지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이문재는 앞장서 문기둥을 넘어뜨리고 기타 목석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가 하면, 서고와 중요문서 등을 소각시키는 등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이해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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