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民衡
(1902) ~ 1930-05-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민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러시아와 만주 등지를 전전하면서 사회운동을 펼치다가 귀국 후 시대일보(時代日報) 기자로 활동하였다. 이민형은 1924년경부터 경성무산청년회(京城無産靑年會)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9년 5월 경성부(京城府) 산수정(山手町) 소재 노사석(盧四石)의 집에서 동지 유정진(兪丁鎭)·이병로(李丙老)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혁명자동맹(朝鮮革命者同盟)을 조직하였다. 부서를 분담하여 서기국 이민형, 조직부 유정진, 조사부 이병로가 맡기로 하였다. 이후 이들은 남산공원 등지에서 수차례 모여 조직의 확대에 노력하였고, 마침내 서울의 14개 청년단체를 통합할 수 있었다. 동년 7월경 중앙청년동맹(中央靑年同盟)을 결성하여 중앙집행위원장이 되었고, 11월 경성차가인동맹위원회(京城借家人同盟委員會)의 조사부장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광주학생운동 격문 사건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민형은 철창 속에서 신음하다가 병을 얻어 석방되었으나, 의전병원(醫專病院)에 입원치료 중 1930년 5월 3일 새벽 3시경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