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敏浩
1895-04-07 ~ 1944-05-2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민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청남도 아산(牙山) 사람이다. 그는 경성의전(京城醫專)을 졸업하고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황해도 일부 및 전라·충청도를 돌아다니며 청년들을 모아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을 추진, 지휘하고 본부로 돌아오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평양(平壤)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1922년 가족을 동반하고 노령(露領)으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다시 만주(滿洲)로 들어가 신민부(新民府) 부원으로 활동하던 중, 아버지 이규풍(李奎豊)이 사망하자 북경(北京)으로 가서 지하공작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장처명(張處明) 등과 함께 체포되어, 일제의 악독한 고문으로 인해 사경에 이르게 되자 가석방되어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1944년 5월 29일 끝내 별세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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