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敏鎬
1910-10-11 ~ 1933-11-1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민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민호는 1928년 5월 함흥고보(咸興高普) 재학중 일본인 교사 배척 및 조선교육방침개선안 시행요구 등의 주장을 하며 동맹휴교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민호는 동맹휴학 이탈자를 제재하다 체포되어 7월에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기물훼기(器物毁棄)로 징역 8월(미결구류 210일)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9년 1월 12일 출소하였다. 이어 1930년 6월 1일에는 함흥 가평탄광(加平炭鑛)의 노동자쟁의에 개입하여 탄광 폭파를 면밀히 계획하고 지원하다 체포되었다. 7월에 경성복심법원에서 폭력행위등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 140일)을 받고 복역중 신병으로 인해 형 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2개월 후 25세의 젊은 나이에 옥고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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