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敏華
1898-01-13 ~ 1923-09-1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민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아산(牙山) 사람이다. 1917년 12월 간도로 망명한 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다하였다. 1919년에는 북간도에서 김좌진(金佐鎭)·서 일(徐一)·김 성(金星)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가입하여 교성대(敎成隊) 소대장으로서 김 훈(金勳)·이 탁(李鐸)·남 익(南益) 등과 함께 군사활동에 전념하였다. 1920년 10월 21일에는 종군장교로서 만주 화룡현 삼도구 천수동(和龍縣三道溝泉水洞)에서 벌어진 청산리독립전쟁(靑山里獨立戰爭)에 참전하여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청사에 빛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계속적인 추격으로 노령(露領)으로 이동 중 밀산현(密山縣)에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게 되자 박 영(朴榮)과 함께 군정서 대표로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자유시참변 이래 다시 밀산(密山)으로 가던 도중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3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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