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珉煥
1899-03-04 ~ 1973-05-19·현대
이명·자·호 洪坡, 李承, 七星童, 李洪坡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민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와 러시아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고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민환은 1917년 함경남도 홍원(洪原)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조선인 순사를 처단하고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년모험단(少年冒險團)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군자금 모집과 무기구매, 운반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민환은 1921년 여름 국내로 잠입하여 함경남도 일대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의 국내거점 마련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동년 12월 함흥(咸興)에서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았다. 군비단은 서간도 지역 장백현(長白縣)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독립군단으로 비교적 국경을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국내 진격 후 일경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후 이민환은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청진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922년 8월 탈옥에 성공하여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임병극(林炳極)의 유격부대에 참가하였다. 1923년 1월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 적기단(赤旗團) 결성대회에 참석하여 부단장(副團長)이 되었는데 적기단은 1922년 소련의 극동위원회 고려부(高麗部)에서 활동하던 이동휘 등 고려공산당 상해파계열의 인물들이 조직한 항일단체였다. 또한 이민환은 1923년에 블라디보스톡 고려부에서 개최한 국치기념일(國恥紀念日) 행사에서 강연을 통해 운집한 한인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하기도 하였으며, 1927년까지 적기단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8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행되던 대표적인 한글신문인 『선봉』 신문사에서 근무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2006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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