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白鉉
미상 ~ 1922-04-10·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백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지역에서 독립군 단체에 가담하여 활약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투쟁론이 적극 대두되었으며, 모든 재만 동포들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70여 개의 독립군부대가 편성되었다. 이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 일본군 국경수비대를 교란시키는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에서 만주에 진출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 두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에 밀린 독립군은 소련·연해주 등지를 전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유시참변 이후 독립군 세력들은 다시 만주로 돌아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백현은 이러한 시기인 1922년 4월 10일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 경호부 및 대한독립단 군무부 유격대 소속의 결사대장으로서 일제 고관 암살과 관공서 습격을 목적으로 만주에서 국내로 진공하였다. 그후 평북 후창군(厚昌郡) 동흥면(東興面) 판막동구(板幕洞口)에서 일경(日警) 직전옥(織田沃) 순사 등 4명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