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範錫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범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는 경성(京城)의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전덕원(全德元)·강윤희(姜允熙) 등과 함께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토론하면서 조약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대궐 밖에서 호소하는 한편 각국 공사(公使)에게 서신을 보내는 등 활동을 벌이다가 붙잡혔다. 그후 을사오적을 처단하기로 결심한 그는 기산도(奇山度)의 1차 처단계획이 실패하자, 석방되어 나온 기산도·이근철(李根哲) 등과 다시 군부대신(軍部大臣) 이근택(李根澤)을 처단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06년 2월 16일 밤, 이근택의 자택으로 변장을 하고 들어가 자살(刺殺)하려 했으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일경 때문에 현장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월 변장하였던 가발이 단서가 되어 기산도와 함께 붙잡혔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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