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麟
1892-01-19 ~ 1936-05-16·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병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안동군 도산면 온혜리(陶山面 溫惠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예안읍(禮安邑)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면장 신상면(申相冕)의 주도하에 핵심주동인물 8명중 한사람으로 활약하였다. 예안 장터의 만세운동은 애국적인 면장과 면서기들이 주동이 되어 주민을 규합해 봉기한 의거로 당시 다른 지방의 면장과 면서기들이 대부분 친일적 측면에 서 있었던 것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1919년 3월 17일 예안읍 장터에서 면서기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수천명의 군중과 함께 제1차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3월 22일 제2차 운동에서도 2백여 군중을 규합하여 미리 마련된 계획에 따라 몇 개의 시위단으로 나뉘어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6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