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丙黙
1900-08-14 ~ 1931-02-2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景璹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병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담양(潭陽) 사람이다.서울에서 출생하여 3·1독립운동 후 형인 병욱(炳旭)과 함께 남만의 관전현(寬甸縣)에 망명하여 참의부(參議府)에 가입,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참의부 참의장(參議長) 윤세용(尹世茸)의 사위가 되어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22년에는 통의부(統義府)에 가담하여 환인(桓仁) 및 흥경(興京)지방 총관소 총관(總管)으로서 교포의 자립과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소학교를 설립하여 어린이들에게 항일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일면, 독립군을 국경지방에 파견하여 일본 기관을 파괴하게 하였다. 또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의 경비를 조달하기도 하였다. 1925년에는 북만 영안현(寧安縣)에서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였으며, 1927년 4월에는 신민부의 지령으로 일제 고관 및 친일 한국인의 주살, 중요 시설의 파괴, 군자금의 모집 등의 사명을 띠고 국내에 진입하였다가 대구에서 체포되었다.1929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모진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옥사 순국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8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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