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河
1903-05-21 ~ 미상·현대
이명·자·호 李丙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병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4년부터 중국 집안현(輯安縣)에서 참의부(參議府)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일본 경관대와 교전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참의부는 남만지역 항일무장투쟁 단체의 통합기관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간부들 사이의 이념분쟁으로 인해 분열되는 상황에서 결성되었다. 통의부의 무장대원인 백광운ㆍ조능식(趙能植)ㆍ박응백(朴應伯)ㆍ김원상(金元常)ㆍ조태빈(趙泰賓) 등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그 명칭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로 결정하였다. 집안ㆍ무송(撫松)ㆍ장백(長白)ㆍ안도(安圖)ㆍ통화(通化)ㆍ유화(柳河)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참의부의 부대 편성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 백광운,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등이 임명되었다. 이병하는 1923년경 중국 집안현으로 건너가 1924년경 백광운(白狂雲)이 지휘하는 참의부에 입대하였다. 1925년경에는 참의부 군사부(軍事部) 제3중대 참사(參士)로 진급하였다. 참의부에서 동지 1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을 하고 9번에 걸쳐 평북 초산군(楚山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일제 경관대와는 3회에 걸쳐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31년 6월 1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ㆍ강도치사ㆍ방화죄 등으로 징역 13년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2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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