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華
1906-02-26 ~ 1952-06-0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大用, 李桂五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병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6년 조부인 이상룡(李相龍)을 따라 부친 이준형(李濬衡)과 함께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하였다. 1921년 무장투쟁단체인 통의부(統義府)가 조직되자 그는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동년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를 살해한 뒤 귀영하였다. 1927년 5월 길림성(吉林省) 반석현(盤石縣)에 기반을 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에 가입하여 사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8년에는 재중국한국청년동맹(在中國韓國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4년 5월 청성진 경찰주재소의 습격과 관련하여 신의주경찰서에 붙잡혀 1934년 6월 2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0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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