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煥
1898-08-19 ~ 1946-09-1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병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 만세운동은 숭일학교(崇一學校) 및 수피아여학교(須比亞女學校) 등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이병환은 숭일학교에 재학생이었다. 그는 기숙사에서 학교 수업을 받고 잇었다.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가 전에 숭일학교 교사인 최병준이 정두범(鄭斗凡)외 6명에게 배분한 「독립선언서」 등을 전달받았다. 그는 이를 김판철(金判哲) 등과 함께 광주 중심 시가에서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시위 군중과 함께 광주우편국까지 다시 행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병환은 3월 10일 「독립선언서」 등을 배포하며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 6월을 재선고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2월 14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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