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普湜
(190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丁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보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塔骨)공원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불교 중앙학림 학생 윤학조(尹學祚)는, 이후 달성군(達城郡) 공산면(公山面) 진인동(眞仁洞)으로 귀가했다. 3월 23일 윤학조는 도학동(道鶴洞) 동화사 부속 지방학림 학생 권청학(權淸學) 등을 만나 “경성과 그 밖의 각 지방에서 야소교 및 천도교 신자, 각 학교 생도들이 한국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시위운동을 하고 있다”며 함께 독립만세를 외칠 것을 권유했다. 또한 덕산정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제안했다. 3월 29일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 이보식 등 9명은 깃대와 종이로 만든 구한국 수기(手旗)를 제작했다. 이후 덕산정의 동화사출장소 김상의(金尙儀) 집에서 1박을 하며 옷감으로 구한국기 1기(旗)를 만들었다. 다음날 3월 30일 오후 2시경 이들 학생 9명은 덕산정 시장에서 천으로 만든 구한국기를 앞세우고 군중 가운데로 들어가 종이 깃발을 흔들면서 ‘구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보식은 만세운동 참가로 체포되어 1919년 4월 1일 구류되고, 같은 해 4월 4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기소되었다. 4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상고했으나,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4월 28일 칙령(勅令) 제120호에 의거 징역 9월 9일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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