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復源
1886-08-01 ~ 1950-09-28·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福源, 李腹源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복원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경남도 함흥(咸興) 사람이다.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찍이 만주에서 김학규(金學奎)·이청천(李靑天) 등과 함께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가 만주를 석권하게 되자 1933년 10월 동삼성(東三省)을 뒤로하고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이청천(李靑天) 등 독립군 장령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쫓아 중국본토로 들어갔다. 그는 민족혁명당에 참여하여 1936년 8월에는 동당 군사편찬위원(軍事編纂委員)으로, 1939년에는 사천성 기강에서 임시정부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1940년 5월에는 3당통합운동이 일어나 한국독립당이 창설되자 그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동년 9월 18일 역사적인 한국광복군의 창립에 참여하여 총사령부 참모에 임명되었다. 그는 서안(西安)에 근거를 옮긴 총사령부 참모처의 편찬과장이 되어 병학(兵學)편찬에 전념하였다.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2지대에 전임되어 대부(隊附)에 임명되었으며, 동년 10월에는 임정 군사위원회 위원을 겸하기도 하였다. 1943년 5월에는 한국독립당 중앙감찰위원을 맡았으며, 1944년 초에는 다시 광복군 총사령부에 전임됨과 동시에 임정 군무부 군사학 편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광복군 정령(正領)으로서 총사령부 고급참모를 맡아 광복시까지 복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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