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鳳奎
1875-04-29 ~ 1920-11-01·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봉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1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18년 만주로 망명하여 삼성학교(三成學校)를 설립하고 교감으로서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에는 서간도 삼원보(三源堡)에 본부를 두고 한국인의 자치활동을 이끌던 한족회(韓族會)에 가담하여 구정(區正)으로서 활약하였다. 1920년 일본군의 출병으로 만주 흥경현 왕청문(興京縣旺淸門)에서 지하영(池霞榮)·이근진(李根眞)·이시항(李時恒)·김도준(金道俊)·황장노(黃長老)·임관호(林寬浩) 등 11명과 함께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