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奉奎
(188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봉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광정단(大韓獨立光正團) 소속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하였다. 대한독립광정단은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에서 성립된 통합 독립군단이다. 1922년 4월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 대진단(大震團), 태극단(太極團), 광복단(光復團)의 일부가 통합하여 조직하였으며, 임강현(臨江縣), 무송현(撫松縣) 등 압록강 주변지역을 근거지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것과 함께 이주한인의 산업발전을 도모하였다. 단장은 윤덕보(尹德甫), 부단장 강진건(姜鎭健), 총무 이태걸(李泰杰), 비서 한운섭(韓雲燮), 재무부장 이병율(李秉律), 군사부장 강승경(姜承京), 서무부장 강구쇠(姜九釗), 경호부장 최진용(崔鎭鏞), 의사부장 김문보(金文甫), 권업부장 강명하(姜明河), 문화부장 한동초(韓東超), 통신부장 겸 회계부장 임태선(林泰仙), 위생부장 김진열(金振烈) 등이었다. 1924년 초부터 조직의 체제를 위원제(委員制)로 바꾸고 주변의 이주한인을 대상으로 한 자치활동에 치중하였다. 통의부(統義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의성단(義成團), 고본계(固本契) 등 7개 독립운동 단체들과 통합운동을 전개해 동년(同年) 11월 군정부(軍政府)인 정의부(正義府)를 성립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봉규는 1922년경 장백현 12도구(道溝)에서 군비단(軍備團) 지단(支團)의 단장(團長)으로 활동하였고, 1925년경 대한독립광정단 제4서(署) 서기(書記)로, 또한 동단(同團) 동서(同署)의 재무부장(財務部長)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1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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