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度
1897-02-09 ~ 1944-02-1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相應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상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대구(大邱) 사람이다.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평민대학(北京平民大學)에 유학하면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후 북경에서 청년회(靑年會) 활동을 하였으며 1927년 12월 4일 상해청년회(上海靑年會) 주최의 임시총회에 북경지역 청년회의 대표로 참여하여 중국 동삼성 일대의 청년단체와 연계하여 중국내 청년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을 목표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中國本部韓人靑年同盟)을 결성하고 중국집행위원에 선임되어 청년단체의 결집에 힘썼다. 1928년 8월 23일 중국 상해에서 변동화(邊東華)·황의춘(黃義春) 등과 함께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28년 11월 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92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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