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召
1860-12-29 ~ 1942-05-2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상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마산(馬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마산군 마산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마산의 독립만세운동은 창신학교(昌信學校)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통이 서울과 연결되면서 이루어졌다. 기독교 지도자였던 이승규(李承奎)는 1919년 2월 23일 서울에서 파견된 이갑성(李甲成)과 만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당시 기독교 장로이던 이상소는 창신학교 교사 임학찬(任學瓚)과 더불어 실질적인 일을 추진해 나갔다. 그는 임학찬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아 이형재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상소 등은 장날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으며, 거사 당일 3천여 명의 군중이 동원되면서 만세운동은 불같이 일어났다. 이에 일본 경찰은 중포병 대대병(重砲兵 大隊兵)과 헌병을 동원하여 무력 진압을 자행하였고, 이상소 등 주동자 50여 명을 체포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미결기간 중 8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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