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浩
1922-07-08 ~ 2010-12-04·현대
이명·자·호 巴山相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상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일본 도근현(島根縣) 익전농림학교(益田農林學校) 재학중인 1939년 2월에 동향 친구인 이재관(李在官)의 동경(東京)소재 하숙집에서 항일결사인 재일학생동지회(在日學生同志會)를 조직하고 항일활동을 폈다. 그후 이들은 동지규합에 힘을 쏟았으며, 1940년 동경 상야공원(上野公園)에서 모임을 갖고 부서를 정하였는데 이때 그는 경상도 책임자로 국내에 들어와 고성군 농회 기수(農會 技手)로 재직하면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일경에 발각되어 1942년 2월 붙잡혔으며, 1943년 5월 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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