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水岩
(189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수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0년 3월 전북 임피군(臨陂郡) 남이면(南二面)에서 박영오의진(朴永五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북 익산(益山) 출신의 박영오는 1910년 전북 익산ㆍ김제(金堤) 등지에서 이규홍의진(李圭弘義陣)의 부장(部將)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10년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음력 2월 24일 김시복(金時福) 등과 전북 고산군(高山郡) 서면(西面) 내월곡리(內月谷里)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수암은 1910년 3월 박영오 등과 총기 4정 및 단총(短銃) 2정을 휴대하고 전북 임피군 남이면 신암리(新岩里) 강성재(康成哉)의 집에서 현금 2원과 백미 10승(昇)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이어 4월 7일 전북 김제군 공동면(公洞面) 난산리(卵山里) 일본인 좌백문태랑(佐伯文太郞)을 찾아가 엽총 1정을 탈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10년 4월 26일 익산헌병분견소에서 파견된 헌병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10년 5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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