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鳳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승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8월 일본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는 등 내정 간섭을 강화하였다. 특히 군대해산은 을사늑약 이후 더욱 활발해진 전국의 의병투쟁을 심화시켰다. 해산 군인은 의병에 투신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이 소지한 무기가 의병의 병력 증강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병장기는 일본에 비해 보잘것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승봉은 1907년 10월 정용기 의진에 투신해 그의 지휘를 받아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총기 20여 정을 휴대한 의병과 함께 10월 10일경 경상북도 청하군과 영천군 등지에서 의병투쟁을 지속했다. 1908년 12월 25일 체포되어 1909년 1월 8일 이른바 ‘폭동’으로 기소되고 징역 1년 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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