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正
1871-04-28 ~ 1924-11-1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承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승정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화순(和順) 사람이다. 평소 남다른 의기(義氣)를 지녔던 그는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우분(憂憤)을 이기지 못하여 '남아 세상에 태어나 국수(國讐)를 갚지 못하고 어찌 가히 집에 거(居)하여 도식투생(徒食偸生)하리오'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결의를 다졌다. 그리하여 김익중(金益中) 등의 동지와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을 계획하였다. 1914년 9월부터 11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에서 김규석(金圭錫), 유병하(柳秉夏) 등에게 '국권회복의 기회가 성숙되었으니 독립운동의 자금을 지원하라'고 권유하여 군자금 250원을 취합하는 등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15년 1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하여 귀가하면서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삼각산에 춘심(春心)은 끊어지고 동정호(洞庭湖)에 추수(秋水)는 차도다. 강토(疆土)가 비록 크다 이르나 한몸 부치기가 어렵도다'라는 비장한 시를 지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00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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