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時乙
미상 ~ 1925-12-17·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시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대 광정단(匡正團)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2년 8월, 서간도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으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될 무렵, 장백현(長白縣)에서는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 4개단체가 통합하여 광정단을 조직하였다. 광정단 조직 당시 주요 간부를 보면, 단장 김호익(金虎翼), 총무장 윤덕보(尹德甫), 군무장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 등을 들 수 있다. 안병기가 참여한 광정단은 조직 후 군사적인 조직과 훈련을 통하여 항일역량을 강화하여 나갔으며, 1923년 봄에는 중앙 총본부를 무송현(撫松縣)에 두고, 임강현(臨江縣)에는 따로이 암살단을 두어 활동하였다. 또한 1923년 6월 중에는 이러한 군사활동 외에 문화, 산업 방면에도 유의하여 조직을 개편하였는데, 당시의 주요 간부 명단을 보면, 단장 윤병용(尹秉庸), 부단장 김호익, 총무 석계(石桂), 비서 김성진(金聲振), 재무부장 김국태(金國泰), 서무부장 장승언, 경호부장 정철명(鄭哲明), 군사부장 이한평(李漢平), 군법관장 김용대(金容大), 문화부장 한성일(韓性一), 산업부장 최진용(崔鎭鏞) 등이었다. 광정단은 1923, 4년에도 윤세복(尹世復)·김호 등을 고문으로 하여 윤덕보·강진건 등이 일을 직접 집행하여, 무기의 구입, 독립군 양성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4년 10월부터는 함경북도 대안 지역에서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1920년 전반기 서간도 지역에서 활발히 무장투쟁을전개하던 광정단에서 이시을은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시을의 이러한 활동은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관헌에 의해 그가 체포됨으로서 종막을 고하게 되었다. 즉 이시을은 1925년 12월 10일 임강현에서 체포되었으며, 중국 관헌은 그를 동월 17일 국내 중강(中江) 일본경찰서에 압송하였다. 이에 이시을은 압송당하던 도중 중강서 관내 호하주재소(湖河駐在所) 근방 압록강 하류 높은 벼랑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호송순사의 등을 차려고 하였다. 이에 놀란 순사는 총으로 이시을을 쏘아 그는 가슴에 총을 맞고 압록강에 떨어져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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