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連鳳
생몰년 미상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연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연봉의 출신지는 미상이나 평남 덕천군 조하면(蚤下面)의 면장이었다. 1907년경 평남 덕천군 일대에서 유익현의진(劉翊鉉義陣)의 평민영장(平民領將)으로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해산 이후 평안남도 일대에도 의병이 봉기하여 치열하게 활동하였다. 대표적인 의병은 양반유생 출신의 김관수의진(金寬洙義陣)이었다. 이에 일본군 수비대의 소위 폭도토벌이 평안남도 맹산·덕천 등 의병 근거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김관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병들은 함경도 지방으로 이동하거나 활동을 중단하였다. 1907년 이연봉은 덕천군 조평리(蚤坪里) 출신의 유익현이 거느린 의병부대의 평민영장으로 활동하던 중 11월 11일 군사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연봉 등 2명은 총살 순국(殉國)하였고, 박팔언(朴八彦) 등 5명은 구속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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