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永先
(1864) ~ 1910-01-23·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영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영선은 전북 순창 출신으로 1908년 9월 양윤숙의진(楊允淑義陣)에 참여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양윤숙은 순창군 무림면(茂林面, 현 龜林面) 출신으로 1906년 최익현의 태인의병(泰仁義兵)에 참여였으며, 1908년 7월 순창에서 창의하여 1909년 12월 김제에서 체포되기까지 회문산(回文山)에 근거지를 두고 순창·임실·김제를 중심으로 전북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그 중 1908년 음력 9월 일본군 남원수비대(南原守備隊) 기습 공격과 1909년 일본군 순창수비대(淳昌守備隊)와의 격전 등이 주목된다. 1909년 12월 김제에서 체포되어 1910년 4월 교수형을 받고 순국(殉國)하였다. 이영선은 1908년 이와 같은 양윤숙의진과 연결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순창군 구암면(龜岩面) 금동동(金桐洞) 출신으로 일본군 토벌대의 동태를 정찰하여 회문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양윤숙에게 전달하는 등의 지원활동을 하였다. 이로 인해 이영선은 체포되어 1909년 11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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