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永善
1889-01-15 ~ 1978-06-23·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震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영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1907년 황해도 우동선(禹東鮮) 의병진에 가담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망명하여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동년 9월 관전현 북구(寬甸縣北溝)에서 통화현 일영사관으로 부임하는 일경 2명을 사살하였다. 1920년 1월에는 국내로 진입하여 황해도 송화(松禾)에서 독립의용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또한 손일민(孫一民)의 소개로 길림성(吉林省)으로부터 폭탄 1상자와 권총 수십정을 관전현으로 운반하기도 했다. 다시 국내로 들어와 황해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1월에는 홍완기(洪完基)·계응련(桂應連) 등과 함께 황해도 일대에서 군자금 8백원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활동하다가 일경의 추적을 피하여 1922년 3월 이화익(李化翼) 등과 같이 상해로 피신하였다. 1922년에는 다시 만주로 돌아와 동년 8월 30일 환인현 남구 마권자 (桓仁縣南區馬圈子)에서 서로군정서·독립단·한교회 등 8개단체 71명의 대표가 참석하여 개최된 통의부(統義府) 조직회의에 변창근(邊昌根)과 함께 대한광복단 군영(營) 대표로서 참석하였으며, 통의부 사판(査判) 소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4년 5월에는 남만군인대표(南滿軍人代表)의 독립소대장으로서 김우근(金宇根)·허운기(許雲起)·현기룡(玄起龍) 등과 함께 무장독립운동의 통합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에는 1개소대를 인솔하고 평안남도에서 군자금을 모집 중 희천 명문동(熙川明文洞) 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의부에 가담하였다가 한·중 친목회인 항일동맹회(抗日同盟會)를 조직하는 등 계속 활동하였다고 하나 기록은 발견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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