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英淑
1893-02-09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永禧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영숙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4년 중국 간도(間島) 송립동일학교(松立東一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대동회(大同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참여하였다. 대동회는 1924년 10월경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에서 연두익(延斗翼) 등이 청년회를 개편하여 조직하였다. 총부(總部)를 액목현(額穆縣) 흑석둔(黑石屯)에 두었는데 의열단(義烈團), 의용군사회(義勇軍事會), 광복단(光復團), 국민회(國民會), 독군부(督軍府) 등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대동회는 각 단체의 위원 합의제로 운영되었다. 이영숙은 1924년 음력 7월 중순경 안도현 소사하자(小沙河子) 근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는 공정단원(公正團員) 조명선(趙明善), 대동청년회원(大同靑年會員) 차응호(車應鎬), 적기단원(赤旗團員) 이용권(李龍權) 등과 만나 연길현(延吉縣) 수신사(守新社) 비암촌(飛岩村)에 사는 유재홍(劉在洪) 등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도록 지휘하였다. 특히 10월 18일에는 이들에게 임명장(任命狀), 독립공채증권, 선전문(宣傳文) 등과 권총, 폭탄 등을 교부하고 동리의 7명의 재산가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5년 3월 13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25년 4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0년 2월 12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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