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영옥
(1901) ~ (1991)·현대
이명·자·호 鄭영옥, (李玉伊)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영옥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남도(慶尙南道) 함안(咸安)에서 1901년경 이석준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이옥이(李玉伊)이다. 1918년 5월 사진신부로 하와이 마우이에 도착하였다. 1923년 3월 11일 동지회에서는 호항한인공동회를 통해 「내지경고서」를 발표하여 국내외 동포들이 임시정부를 옹호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영옥은 같은 해 3월 13일 「내지경고서에 대한 호항한인공동회 발기문」을 발표할 당시 마우이섬 파이아 대표로 동참하였다. 1938년 4월 23일 대한부인구제회 연례대표회에서 마우이 대표로 참석하여 대표회 서기에 선임되었고, 재정조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하와이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와 동지회의 합동을 위한 연합의회에서 회명으로 ‘국민당(國民黨)’과 ‘한민회(韓民會)’가 제청되었지만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해 11월 29일 제8차 국민회와 동지회의 연합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이영옥은 양 단체에 합동축하 편지를 보냈다. 제8차 연합회의에서 두 단체의 회명을 투표에 의해 ‘대한인회(大韓人會)’로 결정하였다. 1940년 3월 9일 대한부인구제회 제18차 연례대표회가 개최되자 이영옥은 힐로 대표로 참석하였고, 4월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회의 회장에 선임되었다. 1941년 3월 3일 대한부인구제회 제19차 연례대표회에서는 서기·재정조사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43년 3월 21일에는 대한부인구제회 호놀룰루지방회 구제원이 되었다. 1941년 3월 9일 부인구제회 임원교체식에서 축사를 하였다. 1942년도 12월 19일 동지회 중앙부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2년 12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재무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대적으로 모금하기 위해, 독립금 수봉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이영옥은 호놀룰루의 펀치볼에서 독립금을 수합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1945년 3월 10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내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해 결성된 전후조선구제위원회의 수금위원으로 선임되어, 해방 이후에도 국내 동포들을 위해 많은 물품을 모아 보냈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부인구제회 혈성금·의무금·외교비·구제금·인구세·독립금·한미승전후원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2021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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