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完模
1901-08-09 ~ 1968-09-2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완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서울 종로(鐘路) 사람이다. 기독교 목사로서, 1943년 11월 일본 산구현(山口縣) 후협정 기독교전도소(厚狹町基督敎傳道所)에서 설교를 통하여 한국민족의 독립을 위한 민족언어의 보존을 역설하고 한국민족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1944년 3월 산구현 후협정에 있는 한국인 이기성(李基成)의 집에서 한국인집회를 개최하고 일제 당국의 한국인에 대한 생활필수품 차별배급제를 규탄했으며, 항일독립을 위하여 실력배양과 건전한 민족독립정신의 함양을 호소하였다. 1944년 7월 16일 미국공군의 제1차 구주(九州) 대공습 이후 일제 패전의 확실성과 한국독립의 필연성을 설교하고 총궐기를 호소하다가, 1944년 8월 22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5년 8월 21일 산구(山口)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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