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完植
1867-09-03 ~ 1943-03-0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華仲, 李菊甫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완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부여(扶餘)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직후 이 운동을 계속적으로 이끌기 위해 같은 해 11월에 서울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규합하였다. 다음 해인 1920년에는 전국 각지를 돌며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여기서 2,600원을 모집하여 상해 임시정부(臨時政府)에 송금하려고 임시정부 연락요원 임경호(林敬鎬)를 만나려다 일경에 붙잡혔다. 1921년 10월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5년 5월에 출옥하였다. 출옥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는데 1939년 12월 21일에 정감록(鄭鑑錄) 비결(秘訣) 중 "왜(倭)는 호호망어선(胡胡亡於鮮)"이란 문장을 이용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활동하였다. 이는 일본은 망하고 조선은 독립하여 동양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일로 인하여 다시 일경에 붙잡혀 금고(禁錮) 6월형을 선고받고 군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발생하여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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