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要習
1901-10-17 ~ 미상·현대
이명·자·호 李奉學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요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촉발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제작·낭독하여 한민족의 만세의지를 드높였다. 같은 날 파고다공원에서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활동은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신영호(申鑅浩)는 서울에서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수원에서 출판된 ‘우리 2천만 동포에게 경고함’이라는 문서를 입수하였다. 신영호는 이 문서를 충청북도 청주군 청주농학교 기숙사에 있는 학생 오석영 등 여러 명에게 전달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이때 이요습은 신영호로부터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세운동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신영호의 권유에 찬성하여 그가 가져온 경고문을 추가로 인쇄하기로 했다. 3월 9일 청주면 청수정에 있는 김현구(金顯九)의 집에서 만세시위 준비를 추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위반’으로 징역 5월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취소와 이른바 ‘보안법위반’이 추가되어 징역 5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상고하였으나 1919년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징역 5월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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