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用範
(187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용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고 고종이 강제 퇴위되면서 항일구국 의식은 치솟았다. 당시 이용범은 임천군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이장준 의진에 가담했다. 이장준은 한산군 출신으로 한때 같은 고향 출신인 노백인(盧伯仁)의 수하였던 이로, 1908~ 1909년경 이장준이 별도의 의진을 꾸렸을 때 이에 뜻을 같이했다. 1908년 후반기 충청남도 임천군 홍북면(洪北面)・가화면(可化面), 한산군 하북면(下北面)을 근거지로 하여 그 일대에서 감찰・세무사 등 관리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고 화승총・피스톨・일본도와 같은 무기를 수급했다. 1908년 음력 11월 11일경 한산군 목과동에서 4원 50전을 모금했는데 11월 14일경 강경경찰서 소속 순사들의 추적으로 인해 정윤옥, 김경숙과 함께 체포되고 무기를 압수당했다. 공주지방재판소에서 1909년 2월 10일 ‘강도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13년 1월 20일 사면되어 석방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