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用植
(187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용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대동군(大同郡) 대보면(大寶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숭실학교(崇實學校) 학생 이응칠(李應七)은 대동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라는 임무를 띠고 평양에서 파견되었다. 이응칠은 대동군 대평외리(大平外里) 소재 기독교 계통의 취명학교(就明學校) 직원과 협의하여 대보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2일 취명학교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 날인 3일에는 400여 명이, 4일에는 5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하면서 면사무소 앞으로 몰려갔다. 이에 면장이 나와 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으나 군중의 위세에 눌려 면장과 면직원들도 군중에 합류하여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였다. 이 시위에 참여했다 체포된 이용식은 1919년 9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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