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郁性
1859-09-2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욱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북청(北淸) 사람이다. 1910년 3월 10일 북청군(北淸君) 노덕면(老德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북청군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은 3월 8일이었다. 그렇지만 시위준비는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원산(元山)·함흥(咸興)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북청의 천도교도와 학생들이 암암리에 시위를 모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3월 8일 오전 9시, 읍내의 천도교도와 학생 2백 50여 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시위에 들어갔다. 이들은 징과 북을 울리며 영덕산(靈德山)에 올라가 시위를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시위는 곧 일본 경찰에 의하여 저지되고, 군중들은 해산 당했다. 이에 이욱성(李郁性)은 조석권(趙錫權)·이기주(李其柱)·조석하(趙錫河) 등과 함께 3월 10일 정오에 노덕면(老德面)에서 재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도 경찰의 제지로 해산당하고, 시위를 주도한 이욱성은 경찰에 체포되어 5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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