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元黙
1893-01-22 ~ 1954-03-07·일제강점기
이명·자·호 國本重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원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正安面)의 주민들은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석송리(石松里) 주민들이 먼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면사무소가 있던 광정리(廣亭里)에 이르러서는 8백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들은 시장을 누비며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경찰주재소를 습격해 응징하기도 했다. 이에 일본 경찰이 진압을 위해 발포하자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제의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날의 시위는 4월 3일까지 계속돼 부근의 산과 들에 횃불이 올려졌고,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졌다. 이원묵은 이러한 장안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이원묵은 1919년 5월 22일 이른바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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