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元文
1901-07-07 ~ 1968-10-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원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여주(驪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여주군 북내면(北內面)에서 이원기(李元基)·원필희(元弼喜)·조경호(趙經鎬) 등 학생주동의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들은 현암리(峴岩里)·장암리(長岩里)·덕산리(德山里)·와룡리(臥龍里) 등 인근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와 선언문을 배포하고 당우리(堂隅里)의 공북학교(拱北學校)에 모여 800여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가 붙잡혔다. 이해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공소하여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 90도로 감형되었으나, 다시 상고하여 8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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