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有弘
1890-10-01 ~ 1919-05-2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유홍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충남 홍성군(洪城郡) 귀항면(龜項面) 황곡리(篁谷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고 순국하였다. 황곡리에 거주하는 이길성(李吉性)은 서울 등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소식에 고무되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자택에서 '대한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종이로 깃발을 만들었다. 1919년 4월 7일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종이 기(旗)와 횃불을 들고 황곡리 마을 월산(月山)에 올라갔다. 그는 깃발을 게양하고 봉화를 올리면서 이유홍ㆍ이백영(李伯榮)ㆍ황도명(黃道明)ㆍ하유숙(河有淑)ㆍ최순보(崔順甫)ㆍ전남규(田南珪)ㆍ이희보(李熙輔) 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후 체포된 이유홍은 1919년 4월 15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 90도를 맞고 그 여독으로 1919년 5월 24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