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陸相
1900-07-15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육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상북도(慶尙北道) 봉화군(奉化郡) 내성면(乃城面)에도 전국 각지의 독립만세운동이 전해지면서 3월 중순부터 만세운동이 추진되었다. 3월 8일 서문시장의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귀가한 내성공립보통학교(乃城公立普通學校) 학생 이구락(李龜洛)은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촉탁교원(囑托敎員) 이육상과 논의했다. 이육상은 3월 16일 밤 학교 기숙사의 학생들에게 독립만세를 외치자고 권유했다. 이어서 학생 박주동(朴柱東) 등과 함께 숙직실에서 구한국기 66기(旗)를 제작했다. 3월 17일에는 독립선언 50매(枚)를 제작했다. 3월 18일 내성 장날에 이육상은 깃발과 선언서를 가지고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 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출발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으로 행진하다가 일제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28일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2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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