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允根
1898-11-24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윤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 결성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8월경 김시황(金時晃)ㆍ김동식(金東植)ㆍ백운기(白雲起)ㆍ김중량(金仲亮) 등과 함께 대한독립보합단을 조직해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평북 의주(義州)ㆍ선천(宣川)ㆍ철산(鐵山)ㆍ용천(龍川)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단장은 김시황(金時晃), 총무는 김동식, 재무는 백운기, 선전은 김도원(金道源) 등이 맡았다. 평북 의주군 내 동암산(東巖山)을 근거지로 군자금을 모집하고 암살대를 조직해 일본인 군인과 경찰, 친일 밀정 및 민족반역자를 처단하였으며, 식민통치 기관을 공격하는 등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0년 10월 2일 산면(山面) 보곡사(普谷寺) 뒷산에서 경찰대의 습격을 받아 백운기 등이 붙잡히고 조직의 문서를 빼앗기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검거를 면한 단원들은 근거지를 서간도의 관전현(寬甸縣)으로 옮기고 조직을 재편한 뒤, 11월 중순경 국내에서 이종영(李鍾英) 등이 조직한 무장단체와 연합해 투쟁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1920년 12월 초 서울 운니동(雲泥洞)에서 밀정의 밀고로 이종영ㆍ김도원 등 20여 명이 붙잡혔고, 이듬해인 1921년까지 보합단원에 대한 검거 선풍은 계속되었다. 이윤근 역시 종로경찰서 순사 이정선(李廷善)의 사살 등을 계기로 확산된 1920년 12월 4~7일 사이의 보합단원 검거 때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17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ㆍ방화죄ㆍ소요죄(騷擾罪)로 징역 10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9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다. 1924년 징역 7년 6월, 1927년 징역 6년 6월 20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8년 1월 1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