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允相
(1891) ~ 1940-12-30·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炳世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윤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부터 1940년까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산타페지방회 사찰,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지방회 회장과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20년 5월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산하 산타페지방회 사찰로 선임되었다. 1921년 3월 초 메리다의 한인 95명과 푸에르토 멕시코와 푸론테라의 한인 67명 등 193명과 같이 쿠바로 이주하였다. 1923년 3월 쿠바 카르데나스에 지방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8월 국치기념식에서 '우리의 장래'란 제목으로 축사를 하였고, 1927년 1월 동 지방회 평의회 평의원, 1929년 부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0년 3ㆍ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였으며, 같은 해 4월 2~3년간 활동이 중단되었던 진성국어학교(進成國語學校)를 다시 부활시키고 학교 간사가 되어 교장 임천택(林千澤) 등과 개학식을 거행하였다. 1930년 4월 카르데나스지방회 총무, 1931년 법무, 1934년과 1936년 총무로 활동하고, 1938~1940년까지 집행위원장으로 3ㆍ1절 기념식, 5월 순국선현추도식, 8월 국치기념식 등을 개최하였다. 집행위원장으로 재임하던 시기, 국민회 총회로부터 구제금 50원을 지원받았다. 이 구제금이 도착하자, 회원들을 소집하여 회원 수만큼 인구세를 납부하자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1917년부터 1940년까지 특별외교비, 의연금, 국민의무금 등의 명목으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6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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