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乙浩
1910-10-15 ~ 1998-03-13·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을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934년 8월, 갑술구락부(甲戌俱樂部)·체육단(體育團) 등의 단체 결성에 참가하여 표면상 체육장려를 내세웠지만, 내면으로는 단원들의 항일의식고취에 노력하였다. 영광지역의 민족운동을 주도해 온 청년회(靑年會)와 농민회(農民會) 등이 일제의 강권으로 해산당하자, 어떤 형태로든지 민족운동을 주도해 나갈 조직이 필요했다. 그때 서울 약학전문학교(藥學專門學校)를 졸업한 이을호가 서울에 보급된 덴마크의 '닐슨북'이라는 도수체조를 배워가지고 귀향하여 영광읍 진명사(珍明社) 마당에서 이 지역의 지성인들을 모아 놓고 매일 아침 이 도수체조를 가르쳤다. 이때 도수체조를 빙자하여 이 고장의 지도층 인사들은 1934년 4월 영광읍 교촌리 명륜당에 모여 영광체육단(靈光體育團)을 창단하였다. 이을호는 여기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체육단의 활동이 활발해지며, 배일사상이 고조되어가자, 일경은 1937년 9월 16일 밤에 '동방약소민족 옹호, 대한독립만세'라 쓴 벽보를 빌미로 300여 명의 애국지사들을 체포하였다. 그도 이때 붙잡혀 1년 4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9년 2월 8일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9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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