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益烈
(1908) ~ 1929-10-1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夢烈, 李鳳烈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익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9년 2월 중순 무렵 중국 봉천성과 길림성(吉林省) 서부 지역에 흩어져 있던 청년회 단체 대표들이 협의하여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이 결성되었다.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은 결성 당시 한국 노동자의 동맹파업과 농민의 소작쟁의를 정신적·물질적으로 원조하는 한편, 중국에서의 항일운동에 직접 참가하여 만주·몽고 침략 정책을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때 관사동맹 상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10월 무렵 국민부(國民府)는 간부 김창헌(金昌憲)이 이끄는 부대원들을 흥경현 왕청문(旺淸門)에 본부를 두고 있는 남만학원(南滿學院)으로 파견하였다. 이는 국민부의 전신이었던 정의부(正義府) 때부터 깊어져 온 남만한인청년총동맹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10월 16일 남만한인청년총동맹의 간부였던 최봉(崔峰)·이태희(李泰熙)·이광선(李光先)·한의철(韓義哲)·지운산(池雲山)과 함께 김창헌 부대에 체포되어 신빈현(新賓縣) 왕청문(旺淸門) 부근에서 총살되었다. 엠엘파(ML파) 기관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는 만주 간부회의 명의로 ‘검거의 때부터 총살에 이르기까지 응혈(凝血)된 사실’이라는 제목의 인쇄물을 제작·배포하여 총살 전후의 상황과 피해자 6명의 약력을 게재하고 애도를 표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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