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翊相
1894-08-15 ~ 1973-04-2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李春道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익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산청(山淸)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20일 경남 산청군 신등면(新等面) 단계리(丹溪里) 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에서의 만세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예(參詣)하러 상경했던 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와 만세소식을 고향에 알리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인근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림 김영숙(金永淑)이 그의 아들 김상준과 더불어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당초 이들은 거사일을 3월 19일로 정하였으나, 거사 당일 아침에 김기갑(金基甲)·윤치현(尹致鉉) 등 동지 몇 명이 일본 경찰에 붙잡히는 바람에 계획대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이에 주도 인물들은 긴급 모임을 가져 3월 20일에 거사를 결행하기로 결정하고, 단계리 시장에서 6·7백 명의 군중과 더불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익상은 이들 시위대열과 더불어 이웃의 단성면(丹城面) 성내리(城內里) 시장으로 향하였다. 시위군중은 일본 헌병대 앞에서 전날에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거창과 진주에서 출동한 8·90명의 일본군이 사격하는 바람에, 11명이 순국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시위군중은 해산하고 말았다. 이익상은 이 사건으로 붙잡혀 1919년 8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1여 년의 옥고를 치르다가 감형 되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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