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仁奎
미상 ~ 1921-11-28·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인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이인규는 1920년 11월 중국 관전현(寬甸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검찰원(檢察員)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3.1운동 이후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각 단체를 해산하고 결성하였으며, 복벽주의(復辟主義)를 이념으로 하고 있었다. 도총재 박장호(朴長浩), 부총재(副總裁)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 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국내외에 모두 100여개소의 지단,지부를 설치하였으며, 만주지역에는 거류동포 100호 이상을 구(區)로 하는 관구(管區)를 두고 10구에 단장을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환인(桓仁),장백(長白),무송(撫松),임강(臨江),관전(寬甸),집안(輯安) 등 10개 현에 지단을 세웠다. 이후 1923년까지 국내와 만주지역에서 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거쳐 의군부(義軍府)로 발전하였다. 이인규는 대한독립단에 소속되어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던 중 일군(日軍)과 교전 과정에서 총상(銃傷)을 입었으며, 순국(殉國)하는 순간까지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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