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仁植
1901-10-12 ~ 1963-03-2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인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옥구(沃溝) 사람이다. 보성고보(普成高普)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3월 1일의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고, 3월 5일 진행된 남대문(南大門) 시위에도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한편 미국영사관(美國領事館)과의 연락 책임을 맡았으며, 전북(全北) 학생대표로 활약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서대문(西大門)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곧 옥구로 내려가 전답과 가옥 등 전재산을 방매하여 만주로 망명하였고 상해로 가 임시정부에 8천원을 헌납하였으며,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건국공채(建國公債) 8매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2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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