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仁和
1858-12-04 ~ 1929-03-14·조선
이명·자·호 李元汝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이인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안동 출신이다. 1895년 12월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일제에 항거코자 의병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1896년 10월에 영양(英陽) 출신 의병대장 김도현(金道鉉) 의진에 참가하여 유격장, 선봉장 등으로 태봉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활약하였으며 또한 격문(檄文) 및 포고문을 관청에 발송하는 등의 구국 항일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한 관동의 평해(平海), 강릉(江陵), 삼척(三陟) 등 지역에서 거의한 의병진과 긴밀하게 협조를 유지하면서 항일투쟁을 하였다. 1896년 10월에 선봉장으로서 일본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으나 전세(戰勢)가 불리하게 되어 일시 퇴진하였다. 이후 전열을 재차 정비한 뒤 전방장(前方將) 이중언(李中彦), 참모 이빈호(李彬鎬) 등과 30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접전하는 등 전기의병(前期義兵)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간 여러 차례 전투에서 일군의 신식무기를 당하지 못하고 당시 국내 정세를 감안하여 1909년에 이르러 예안(禮安)에 선명학교(宣明學校)를 설립하고 인재를 육성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켜 훗일에 대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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